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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ackyard: Poor House

A real fulfilling experience working as a director in a foreign crew but had some bitter sweet memories because of communicating in a language im not really familiar with. According to my friend Makbul, this is how he describe my first horror short film, Poor House:

Ghosts arise from human's memories of the living dead. But instead, Poor House visualizes how ghost could also revive from the memory of poor spatial surroundings. A brief experimentation on what could be the ghosts amidst the modern, urban public housing system.

Its also my first time to shoot in 4K using Red One camera.  Here are some shots In the process of making this film:

Pre production



Production





Post-Production




Why Poor House
The title is a play of words of a famous korean drama Full House and a first world economy crisis House 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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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賭け事」"Gambling" BTS

Japanese Historial 'Jidieki' Film Behind the Scene Shots, Kyoto Filmmakers Lab, Kyoto Historica Film Festival 2012, Kyo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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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도 영화제가 있다고? : 평양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자 Nash Ang 인터뷰

I was interviewed by the Ministry of Unification after going from North Korea to South Korea, carrying the Best Director award from the 13th Pyongya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Original Link: http://blog.unikorea.go.kr/2799


평양에도 영화제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평양에도 '평양국제영화축전'이라는 영화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제의 영문이름은 Pyongya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재미있게도 이 영화의 약자는 부산 국제 영화제와 같은 PIFF입니다. 오늘은 평양국제영화축전에 참가해 필리핀인 최초로 상을 받은 Nash Ang씨를 만나보았습니다. Nash Ang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의 평양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내쉬라고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감독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석사과정)입니다.

▶ 최근 평양에서 열렸던 평양국제영화축전에 참가하셨고, 또 수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평양국제영화축전이라는 영화제가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영화제여서 설명을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평양국제영화축전은 어떤 영화제였고, 평양은 어떠했나요?

  평양국제영화축전은 2년에 한번 평양에서 열리는 영화제입니다.
  평양에 갔을 때의 느낌은 마치, 타임워프를 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것들은 마치 1970년대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죠. 2012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빌딩들과 길거리의 사인들, 테크놀로지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모든 것들이 1970년대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 조차, 그들의 스타일은 나의 부모,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고요?
  네, 그들의 옷입는 스타일, 그리고 머리 모양이 저로 하여금 그들을 떠올리게 만들었죠.
▲ Nash Ang의 영화 Live to dive의 포스터

▶ 이번에 평양국제영화축전에 Live to dive라는 영화를 출품하셨는데요, 이 영화에 대해서 블로그 독자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살기 이전에 촬영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촬영한 것이 작년 7월이고, 한국에서는 11월부터 살기 시작했으니까요. 이 영화는 살기 위해서 다이빙을 하는 필리핀의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아이들은, 아주 적은 경제적 보상을 위해 굉장히 위험한 다이빙을 하고 있어요. 꽤 슬픈 내용의 다큐멘터리입니다.

▲ Nash Ang의 영화 Live to dive의 스크린 샷

▶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아마 10월 말 경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상영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까지 한국어 자막이 마련될거에요.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상영을 하였을 때도 자막이 있었긴 하지만, 그때는 아무래도 북한식 한국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와는 차이가 있었죠. ‘밥 먹었어요? ‘가 아니라 ‘밥 먹었소‘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번에 한예종에서 상영되는 버전에서는 완전한 ’한국어‘ 자막이 있을 예정입니다.
▶ 처음 평양국제영화축전에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저는 이 영화제에 참가한 첫 필리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제에서 수상한 첫 번째 필리핀 사람이기도 하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제의 참가는 충분히 두근거릴만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제의 참가를 처음으로 결정했을 때,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왜냐면 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고, 무엇보다도 정부 장학생이니까요. 현재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가 북한의 영화제에 참석한다는 것이 조금은 꺼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저의 한국인 친구들 역시 북한의 영화제에 참석하기를 말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뜻밖에도 저를 지도하고 계신 교수님들께서 저를 지지해주셨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꺼릴 것이 무엇이 있냐며 저의 참가를 지지해 주셨기에 그에 용기를 얻어 영화제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제 영화가 출품되기로 확정된 후 20일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었는데요, 이 기간에 저는 기금 마련을 위해 이태원에서 영화 상영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평양에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다행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고, 무리없이 평양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인 이자스민 의원 역시 나를 도와주었어요.
▲ 수상 트로피를 들고 있는 Nash Ang

▶ 그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북한에서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가이드와의 에피소드가 있었죠. 모든 사람들에게 한명의 가이드가 붙었어요.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는 가이드 없이는 어떠한 곳도 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이드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가이드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국제적 정세 또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였어요. 남한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고, 그들의 지도자인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죠. 내가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을때, 가이드가 만족스러운 답변을 해 준적은 사실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말이에요.
▶ 북한에서 한국과의 차이 중 흥미로웠던 것이 있었나요?
  북한과 한국은 모든 점에서 차이가 나요. 하지만 외국인인 나에게는 어휘적 차이가 무척이나 흥미로웠죠. 나는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기 때문에, 가이드에게 한국말로 말을 하기를 시도해보았었어요. 내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에 놀란 가이드에게 ‘남조선 친구에게 배웠습니다.’ 하고 농담처럼 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재미있는 것은 북한말이 나에게는 좀 더 알아듣기 쉬웠다는 것이에요. 남한 사람들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정말 문법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말을 하거든요.
  같은 노래이지만 노래 가사가 다르다는 점 또한 무척이나 신기했어요. 크루즈를 타고 관광을 하다, 크루즈 안에 있는 노래방에 가게 되었는데요.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는 한국 노래인 ‘아리랑’을 불렀어요. 그런데 뒷부분의 노래 가사가 다르더라고요. 같은 노래이지만 다른 노래 가사를 가졌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 마지막으로 통일부 블로그 독자분들에게 하실 분들이 있으세요?
  남한과 북한은 원래 한 국가였지만, 아주 오랜 시간동안 갈라져 있다는 점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도 무척이나 슬픈 일이에요. 남한과 북한이 갈라진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러한 시간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남한과 북한이 노력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피상적인 생각을 벗어나 그들의 무의식 속을 깊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본다면 서로 같은 가치관을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남한과 북한은 원래 같은 국가였으니까요.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저는 정말 슬펐어요. 사실 남한과 북한, 같은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아리랑을 들었을 때에는 특히나 슬펐어요. 아리랑이라는 노래에서 느껴지듯, 이들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분명한 한 국가이니까요.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인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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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E into a Night of Filipino Art: Film, Music and Networking

Obra Multimedia with Pinoy Iskolars sa Korea, Inc. (PIKO, Inc.) invites everyone to "DIVE into a Night of Filipino Art" on September 14, 2012 (Friday), 8PM at Camarata Studio, Itaewon, Seoul.

The Filipino Art Night is composed of Filipino film and music: a film screening of Nash Ang's "Live to Dive" (Lusong) and performances of Filipino Artists: tenor Patrick Brian Lauchang and soprano Shaddai Solidum (Filipino Traditional Love Songs), and Marco Hilotina (Filipino Ethnic Music). The art night will be followed by a networking party with cool drinks and awesome fun.

Come and Dive into a Night of Filipino Art!

Directions to the Venue:
To get to the Camarata Studio, go to Noksapyeong Subway Station, exit 2. Walk straight approximately 100 meters to the traffic light, and veer left into Haebangchon. Walk about 400 meters (about 5 minutes), and infront of Jacoby's Burger, the CMC Studio will be on your left, in the same building as Family Mart.